미국 특허 심사에서 이중특허 거절을 받으면 가장 손쉬운 해법으로 거론되는 것이 터미널 디스클레이머(Terminal Disclaimer, 존속기간 포기서)입니다. 서류 한 장으로 거절을 풀 수 있지만, 제출하는 순간 특허의 만료일과 소유 구조에 장기적인 제약이 생깁니다. 이 글에서는 터미널 디스클레이머의 개념과 법적 효과, 제출 절차와 비용, 존속기간 조정과의 관계와 최근 판례, 그리고 제출 전에 따져 볼 판단 기준까지 기업 IP 실무자의 시각에서 정리합니다.
터미널 디스클레이머, 서류 한 장의 무게
미국에서 계속출원을 몇 건 진행하다 보면 거의 예외 없이 마주치는 거절 이유가 있습니다. 비법정 이중특허(Nonstatutory Double Patenting)입니다. 심사관이 "이 청구항은 이미 등록된 모특허 청구항을 조금 바꾼 것에 불과하다"며 거절하면, 대리인은 대개 짧게 이렇게 권합니다. "터미널 디스클레이머를 내면 바로 해결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사건에서 이 서류 하나로 거절이 풀리고 곧바로 허여 통지가 나옵니다. 문제는 그 대가를 제대로 따져 보지 않고 제출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터미널 디스클레이머는 한 번 내고 등록되면 사실상 되돌릴 수 없고, 특허의 만료일을 앞당기고, 두 특허를 영원히 같은 사람이 보유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입니다. 나중에 특허 하나만 따로 매각하거나, 계열사 간에 권리를 나눠 갖거나, 소송에서 존속기간을 다투는 국면이 오면 그때 비로소 이 서류의 무게를 실감하게 됩니다.
저도 포트폴리오 매각 실사 과정에서 터미널 디스클레이머로 묶인 패밀리 때문에 협상 구조를 다시 짠 경험이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개념부터 효과, 절차, 최근 판례, 판단 기준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터미널 디스클레이머의 개념과 이중특허 거절의 관계
터미널 디스클레이머(Terminal Disclaimer)란 특허권자나 출원인이 특허 존속기간의 마지막 부분, 즉 '끝(terminal)' 구간을 스스로 포기한다고 선언하는 서류입니다. 근거는 미국 특허법 제253조(b)와 연방규정 37 CFR 1.321입니다. 한국어로는 '존속기간 포기서' 또는 '터미널 디스클레이머'라고 그대로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서류가 필요한 이유는 이중특허(Double Patenting) 원칙 때문입니다. 이중특허란 같은 사람이 실질적으로 같은 발명에 대해 특허를 두 번 받아 권리 기간을 사실상 늘리는 것을 막는 원칙입니다. 이중특허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두 출원의 청구항이 문언상 완전히 같은 발명인 경우의 법정 이중특허입니다. 이때는 터미널 디스클레이머로 해결할 수 없고, 어느 한쪽 청구항을 삭제하거나 다르게 보정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두 청구항이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한쪽이 다른 쪽의 자명한 변형인 경우의 비법정 이중특허입니다. 자명성 유형 이중특허(ODP, Obviousness-type Double Patenting)라고도 부릅니다. 판례로 형성된 원칙이며, 바로 이 경우에 터미널 디스클레이머가 해결책이 됩니다. 뒤에 등록되는 특허가 앞선 특허보다 오래 존속하지 못하도록 만기를 맞추고, 두 특허가 서로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 침해자를 이중으로 괴롭히는 일을 막으면 이중특허의 폐해가 사라진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터미널 디스클레이머를 제출하면 생기는 두 가지 효과
터미널 디스클레이머를 내면 출원인은 두 가지를 약속하게 됩니다. 하나는 만료일 연동이고, 다른 하나는 공동 소유 유지입니다. 두 효과는 특허가 존속하는 내내 따라다닙니다.
| 효과 | 내용 | 실무 영향 |
|---|---|---|
| 만료일 연동 | 기준 특허의 법정 존속기간 만료일 이후의 기간을 포기 |
존속기간 조정(PTA)으로 늘어난 기간도 함께 사라질 수 있음 |
| 공동 소유 유지 | 두 특허를 같은 권리자가 보유하는 동안에만 권리 행사 가능 |
특허 하나만 따로 매각하면 해당 특허는 집행 불능 |
| 철회 가능성 | 등록 전에는 청원으로 철회를 구할 여지가 있음 |
등록 후에는 사실상 되돌릴 수 없음 |
여기서 기준 특허(Reference Patent)란 이중특허 거절의 근거가 된 앞선 특허를 말합니다. 실무에서 자주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쓰이는 문안은 기준 특허의 '법정 존속기간' 만료일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따라서 기준 특허가 유지료 미납으로 일찍 소멸하더라도, 터미널 디스클레이머로 연결된 특허가 그 날 함께 소멸하지는 않습니다. 반면 공동 소유 요건은 매우 엄격해서, 두 특허 중 하나만 자회사로 이전해도 이전된 쪽이든 남은 쪽이든 권리 행사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공동연구계약에 따른 발명은 별도 규정(37 CFR 1.321(d))에 따라 조건이 조금 다르게 적용됩니다.
터미널 디스클레이머가 요구되는 대표적인 상황
이중특허 거절은 같은 출원인 또는 같은 권리자 소유의 특허·출원 사이에서만 문제 됩니다. 실무에서 터미널 디스클레이머를 요구받는 상황은 대체로 정해져 있습니다.
가장 흔한 경우는 계속출원(Continuation Application)입니다. 계속출원은 모출원과 같은 명세서로 청구항만 새로 구성해 내는 출원이기 때문에, 모특허 청구항과 자명한 변형 관계가 되기 쉽습니다. 사실상 계속출원의 상당수가 터미널 디스클레이머를 거쳐 등록된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습니다.
새로운 내용을 덧붙이는 일부계속출원(CIP)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출원의 내용에 기댄 청구항은 모특허와 겹치기 쉽습니다. 또한 패밀리 관계가 전혀 없는 별개의 출원이라도, 같은 회사가 비슷한 시기에 유사 기술을 여러 건 출원했다면 서로 기준 특허가 되어 이중특허 거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준이 되는 쪽이 아직 등록되지 않은 출원이라면 '잠정적(Provisional)' 이중특허 거절이라는 형태로 통지됩니다.
반대로 터미널 디스클레이머가 필요 없는 대표적인 경우가 분할출원(Divisional Application)입니다. 심사관의 제한요구(하나의 출원에 섞인 여러 발명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요구)에 따라 나눈 분할출원은 미국 특허법 제121조의 안전항(Safe Harbor) 조항 덕분에 모특허를 근거로 한 이중특허 거절을 받지 않습니다. 다만 분할출원의 청구항이 제한요구에서 구분된 경계를 넘어가면 이 보호를 잃습니다.
터미널 디스클레이머 제출 절차와 비용
현재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USPTO 전자출원 시스템인 Patent Center에서 제공하는 전자 터미널 디스클레이머(eTD)입니다. 정해진 양식에 기준 특허나 출원번호, 소유 관계를 입력하면 요건을 갖춘 경우 즉시 자동 승인됩니다. 종이 양식으로 내면 심사 담당 부서가 검토하므로 처리에 시간이 걸리고, 소유 관계 기재 오류로 반려되는 일도 종종 생깁니다.
서명은 출원인이나 특허권자, 또는 USPTO 등록 대리인이 할 수 있습니다. 출원인이 법인 양수인이라면 소유권 진술서(37 CFR 3.73(c))를 통해 해당 출원의 권리를 정당하게 보유하고 있음을 밝혀야 합니다. 기준 특허와 대상 출원의 권리자가 서로 다르게 등록되어 있으면 터미널 디스클레이머가 수리되지 않으므로, 제출 전에 USPTO 양도 등록 기록부터 맞춰 두는 것이 좋습니다. 계열사 간 권리 이전이 잦은 회사라면 이 단계에서 의외로 시간이 걸립니다.
관납료는 건당 183달러이며, 이 수수료는 소기업이나 마이크로 엔티티 감면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하나의 출원이 여러 기준 특허와 이중특허 관계에 있다면 기준 특허마다 별도의 터미널 디스클레이머가 필요할 수 있어, 비용보다는 관리해야 할 연결 관계가 늘어난다는 점이 더 큰 부담입니다.
참고로 2026년 7월 20일부터 미국 밖에 주소를 둔 출원인과 특허권자는 대부분의 서류를 USPTO 등록 대리인의 서명을 받아 제출해야 합니다. 개인 발명자 명의 출원이라면 터미널 디스클레이머도 미국 등록 대리인을 통해 내야 효력이 인정됩니다.
존속기간 조정(PTA)과의 관계, 최근 판례 동향
터미널 디스클레이머가 최근 더 중요해진 이유는 존속기간 조정(PTA, Patent Term Adjustment)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PTA는 USPTO의 심사 지연을 보상해 특허 존속기간을 늘려 주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터미널 디스클레이머를 낸 특허는 PTA로 늘어난 기간이 있더라도 기준 특허의 만료일을 넘어서 존속할 수 없습니다. 심사 지연으로 1~2년의 보상을 받아 두었더라도 터미널 디스클레이머 한 장으로 그 기간이 통째로 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In re Cellect 판결의 파장
2023년 연방순회항소법원은 In re Cellect 사건에서, 이중특허 판단은 PTA가 반영된 만료일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같은 패밀리에서 PTA를 받아 더 늦게 만료되는 특허가 터미널 디스클레이머 없이 등록되었다면, 앞서 만료되는 형제 특허를 근거로 이중특허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후 등록 특허를 보유한 기업들은 패밀리 내 PTA 보유 특허를 다시 점검하게 되었습니다.
Allergan 판결이 정리한 범위
다만 2024년 Allergan v. MSN 판결은, 먼저 출원되어 먼저 등록된 최초 특허는 나중에 출원·등록된 자손 특허를 근거로 이중특허 무효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그 범위를 일부 정리했습니다. 또한 USPTO는 2024년 터미널 디스클레이머 제출 시 권리 행사를 더 제한하는 약정을 요구하는 규칙안을 내놓았다가, 반대 의견이 많아 같은 해 말 철회했습니다. 제도와 판례가 계속 움직이는 영역이므로 중요한 패밀리는 주기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터미널 디스클레이머 제출 전 판단 기준과 대안
제가 사내에서 터미널 디스클레이머 제출 여부를 판단할 때는 "이 특허를 앞으로 단독으로 거래하거나 행사할 가능성이 있는가"와 "포기하게 될 존속기간이 얼마나 되는가" 두 가지를 먼저 봅니다. 둘 다 해당하지 않는다면 터미널 디스클레이머가 가장 경제적인 해법입니다. 반대로 하나라도 걸린다면 아래의 대안을 먼저 검토합니다.
| 대응 방법 | 적합한 상황 | 유의점 |
|---|---|---|
| 터미널 디스클레이머 제출 | 패밀리를 함께 보유·행사할 계획이고 포기할 PTA가 거의 없을 때 |
등록 후 철회 불가, 단독 매각 제한 |
| 자명하지 않다는 반박 | 두 청구항이 기술적으로 뚜렷이 구별될 때 |
심사가 길어질 수 있음 |
| 청구항 보정 | 구별되는 특징을 추가해도 사업상 범위가 충분할 때 |
권리 범위가 좁아짐 |
| 잠정 거절 시 대응 보류 | 기준이 되는 쪽이 아직 출원 중일 때 |
최종 단계에서는 대응이 필요함 |
한 가지 덧붙이면, 터미널 디스클레이머를 냈다고 해서 두 발명이 자명하다고 인정한 것으로 취급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미국 법원의 오래된 입장입니다. 소송에서 이를 근거로 진보성을 다투기는 어렵다는 뜻이므로, 제출 자체를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제출 결정과 그 이유는 사건 기록에 남겨 두어, 나중에 포트폴리오를 거래할 때 연결 관계를 바로 설명할 수 있게 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터미널 디스클레이머 핵심 정리
터미널 디스클레이머는 비법정 이중특허 거절을 해소하기 위해 특허 존속기간의 마지막 부분을 포기하는 서류입니다. 제출하면 기준 특허의 법정 만료일에 맞춰 존속기간이 끝나고, 두 특허를 같은 권리자가 보유하는 동안에만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문언상 같은 발명에 대한 법정 이중특허는 이 서류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제출은 Patent Center의 전자 양식으로 하면 대부분 즉시 승인되며, 관납료는 건당 183달러입니다. 다만 PTA로 늘어난 기간이 함께 사라질 수 있고, In re Cellect 판결 이후 PTA를 보유한 패밀리 특허의 이중특허 위험이 커졌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분할출원은 안전항 조항으로 보호받기 때문에 터미널 디스클레이머가 필요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핵심은 거절을 빨리 푸는 것보다, 그 특허를 앞으로 어떻게 쓸 것인지를 먼저 정하는 데 있습니다. 지금 이중특허 거절을 받은 사건이 있다면, 대리인의 제출 권고에 바로 동의하기 전에 포기될 PTA 기간과 향후 단독 거래 가능성부터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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